“‘옛날이 좋았지’ 같은 말은 꺼내지도 않아”
“만병은 마음에서 온다”…신간 ‘100세 할머니 약국’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00세쯤 살다 보면 가만히 숨만 쉬어도 지혜가 쌓일 듯싶다. 일본 도쿄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히루마 에이코(比留間榮子·1923~2025) 할머니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고령 약사’다.
올해 4월 영면한 그는 100세가 넘은 최근까지도 비교적 활발히 활동했다.
그가 쓴 신간 에세이 ‘100세 할머니 약국'(윌마)에 따르면 장수와 활력의 비법은 일과 배움이다. 그는 컴퓨터로 새로운 기능을 익히고, 스마트폰 메신저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화상 회의를 통해 주요한 결정을 하는 ‘요즘 사람’이다. 그는 이런 신문물을 배우는 걸 “젊어지는 약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100세가 넘어서도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모든 일은 하루하루 배움의 연속”이라면서 약과 관련된 최신 정보까지 죄다 공부한다. 그는 “약사인 이상 약에 관한 최신 정보를 놓쳐서는 안 되기에,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 항상 저를 자극한다”고 밝혔다.
배울 것이 많기에 옛것에 사로잡혀 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젊은 날을 그리워하며 ‘그때가 좋았지’와 같은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의 삶은 ‘현재’에 정조준돼 있다.
“세상도 사람도 변하는 법이니, ‘옛날이 좋았지’ 같은 말을 쓰지 않으려고 늘 신경을 씁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좋은 점이 있으니까요.”
100년의 삶이 쉬웠던 건 아니다. 젊었을 때는 도쿄 대공습을 경험했다. 불바다라는 말은 책에서만 봤는데, 실제 눈앞에 펼쳐졌다. 피난 갔다가 돌아온 도쿄는 모든 게 불타 있었다.
약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약국을 재건했다. 아들도, 손자도 모두 약사다. 병원 골목에 밀집한 약국 거리에서 그의 약국은 터줏대감 격이다. 남편은 24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아흔다섯에 인공관절 수술을 해 혼자 걷기가 힘들었지만, 매일 재활 훈련을 받았다.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꾸준히 노력의 길로 이끌었다.
생로병사를 다 거치며 100년을 살다 보니 인생에는 리듬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병과 마주하는 시기, 난관을 극복하려 애쓰는 시기, 꿈을 좇아 돌진하는 시기, 누군가의 삶을 돌봐야 하는 시기, ‘이제 겨우 다 올라왔네!’라며 안심하는 순간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는 시기….
그는 삶에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잠시 쉬라고 권한다. 또한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안 좋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실제로 일어난다 해도 “일이 벌어지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란다.
말을 조심할 것,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리려 하지 말 것, 불가능하니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 것, 사과하려면 빨리할 것, 잔소리는 ‘일절’만 할 것, 가끔은 나를 위해 사치를 부릴 것, 눈치보다는 자부심을 키울 것, 만병은 마음에서 오니 마음 관리를 잘할 것 등 할머니의 조언은 이어진다.
책은 이처럼 할머니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담았다. 세월을 허투루 통과하지 않은 ‘어른’의 말은 들어 새길만 한 이야기들이 많은 법인데, 저자의 고언(苦言)이 그러한 듯하다.
이정미 옮김.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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