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친은 ISTJ, 나는 ENFP.
토요일 오후 2시. 당신은 소파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문득, 지난주에 저장해 둔 강릉의 어느 신상 카페 사진을 발견한다. 햇살이 통창으로 쏟아지는, 그림 같은 공간. 당신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 아이디어가 폭죽처럼 터진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저녁노을을 볼 수 있겠지. 가서 조개구이에 소주도 한잔하고, 바다 소리를 들으며 잠들면 완벽할 거야. 당신은 거실 한쪽에서 가계부를 정리하는 그의 등 뒤에 대고 외친다. “우리, 그냥 지금 당장 바다 보러 갈까?”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도, 설렘도, 그렇다고 분노도 없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외계 신호를 수신한 관제탑’ 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을 뿐이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당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수십 개의 연산 작업이 돌아간다. ‘바다? 지금? 계획 없이? 서울-양양 고속도로는 주말이라 분명 막힐 텐데. 숙소는? 예산은? 내일 아침 9시에 예약해 둔 세차는 어떡하고?’
이것은 단순히 주말 계획에 대한 사소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ENFP라는 행성과 ISTJ라는 행성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우주적인 사건이다.
외향(E)과 내향(I), 직관(N)과 감각(S), 감정(F)과 사고(T).
모든 지표가 정반대를 가리키는 당신과 그. 사람들은 말한다. 서로 다른 점에 끌리는 거라고. 하지만 그 끌림의 유효기간이 끝났을 때, 남는 것은 환상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MBTI는 혈액형 성격론의 세련된 버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낙인찍는 주홍글씨가 아니라,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그 사람의 ‘사용 설명서’를 건네주는 것에 가깝다.
문제는, 그 설명서가 서로의 언어가 아닌, 해독 불가능한 외계어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이제부터, 그 난해한 설명서를 함께 번역해보려 한다.
ISTJ의 세계: 계획, 현실, 그리고 숨겨진 로맨스
세상 사람들은 ISTJ를 ‘노잼 공무원’ 스타일이라고 놀리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의 세계는 즉흥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안정성 위에 세워져 있다. 그들의 언어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검증된 데이터와 꾸준한 행동이다.
그가 당신의 사소한 습관—가령 당신이 오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로맨틱해서가 아니다.
‘내 여자친구는 오이를 먹지 않는다’는 데이터가 그의 뇌내 서버에 저장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다.
당신이 흘린 말(“요즘 컴퓨터가 느린 것 같아”)을 기억해뒀다가 주말 내내 당신의 컴퓨터를 포맷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 그것이 그가 온몸으로 말하는 “사랑해”다.
당신의 안전과 편의라는 데이터를 최우선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ISTJ식의 암호다.
그들의 로맨스는 뜨거운 불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난로와 같다. 매일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당신이 추울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 그 꾸준함과 책임감이야말로 ISTJ가 당신에게 바치는 가장 큰 헌사다.
당신의 ENFP적 시각에서는 그것이 지루하고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사랑의 전부일 수 있다.
ENFP의 세계: 가능성, 열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불안
ENFP인 당신의 세계는 ‘만약’이라는 단어 위에 세워져 있다. ‘만약 우리가 저곳에 간다면?’, ‘만약 우리가 이런 걸 해본다면?’ 당신의 머릿속은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반짝이는 우주다.
당신에게 사랑은, 그 반짝이는 가능성을 함께 탐험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에게 뜬금없이 “우리 나중에 산토리니에 가서 한 달만 살아볼까?”라고 묻는 것은, 당장 항공권을 예약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당신과 함께라면, 이렇게 상상만 해도 가슴 뛰는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ENFP식의 사랑 고백이다. 당신의 그 ‘엉뚱한’ 질문들은, 사실 그와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당신의 그 무한한 에너지는 때로 현실의 디테일을 놓친다. 다음 달 카드값, 자동차세 납부일,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졌다는 사실. 당신에게 이런 것들은 세상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는 사소하고 귀찮은 장애물일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ISTJ인 그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당신이 꿈을 꾸는 동안, 그는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당신이 넘어지지 않도록 기반을 다져준다.
충돌 지점과 해결의 열쇠: 우리는 서로의 번역가가 될 수 있을까?
이 두 개의 다른 행성이 하나의 궤도를 돌기 위해서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려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몇 가지 대표적인 충돌 지점과 그 해결의 열쇠를 살펴보자.
1. 즉흥 vs 계획: ‘계획된 즉흥성’이라는 기묘한 타협
ENFP는 계획 없는 여행을, ISTJ는 여행 없는 계획을 꿈꾼다. 이 간극은 메울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야 한다. 바로 ‘계획된 즉흥성’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는, 우리 아무 계획 없이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녀 보자.” 이것은 ISTJ에게 ‘정해진 시간’이라는 안정감을 주고, ENFP에게는 그 시간 안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서로의 숨 쉴 틈을 존중하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타협이다.
2. 애정 표현: ‘말’로 듣고 싶은 여자, ‘행동’으로 보여주는 남자
ENFP인 당신은 그의 “사랑해”, “예쁘다”라는 말을 통해 사랑을 확인받는다. 반면 ISTJ인 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한다. 이 차이는 끝없는 오해를 낳는다. 그는 최선을 다해 행동하는데 당신은 사랑이 부족하다 느끼고, 당신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데 그는 부담을 느낀다.
해결책은 ‘번역’이다. ENFP는 그의 행동을 언어로 번역해서 들어야 한다. 그가 당신의 부모님 댁에 보낼 과일을 함께 골라주는 것을, ‘당신 가족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그의 고백으로 들어야 한다.
반대로 ISTJ는 애정 표현을 감정의 영역이 아닌 ‘과업’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 스마트폰에 ‘매주 수요일 저녁, 여자친구 칭찬하기’라고 적어두는 것. 로맨틱하지 않다고? 천만에. ISTJ가 당신을 위해 자신의 원칙을 깨고 하나의 ‘할 일’을 추가했다는 것만큼 로맨틱한 것은 없다.
3. 갈등 해결: 터뜨리는 여자, 동굴로 들어가는 남자
문제가 생겼을 때, ENFP는 대화를 통해 감정을 즉시 해소하려 한다. 하지만 ISTJ는 그 상황을 피하고,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 논리적인 분석과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당신이 문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그는 동굴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할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한 시간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당신이 자신을 버려두지 않았다는 안정감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그 한 시간 뒤, 그는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논리 정연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는 당신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고, 당신은 그의 자유로운 날개가 되어준다. 그는 당신이 현실에 발붙이게 해주고, 당신은 그가 하늘을 보게 해준다.
따로 있을 때 당신들은 그저 ISTJ와 ENFP라는 네 글자의 조합일 뿐이지만, 함께 있을 때 당신들은 비로소 단점을 보완하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가 된다.
중요한 것은 당신들이 얼마나 다른지가 아니다. 서로의 사용 설명서를 끝까지, 그리고 기꺼이, 다정한 마음으로 읽어주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관계가 시한폭탄이 아닌, 환상의 커플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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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간 안내
당신의 이야기는 ‘운명’이 아닌, ‘용기’가 될 거예요.나만 아는 상담소 첫 번째 책, 『운명이라는 착각』 출간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졌나요?
그 아픔과 혼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관계 전문 심리 상담소, 나만 아는 상담소입니다.
저희는 수많은 마음의 상처 속에서 흩어져 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정성껏 모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정서 학대, 가스라이팅, 교제 폭력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 고통의 실체를 당신이 쉽게 이해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요.
오랜 기다림 끝에, 그 마음이 드디어 ‘운명이라는 착각’ 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 책은 당신을 탓하던 세상의 목소리 속에서 당신의 편이 되어줄 다정한 친구이자, 아픈 관계를 끊어낼 용기를 주는 단단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그 착각의 안개를 걷고, 당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진정한 길을 찾아 나설 시간입니다. 그 길의 시작에 저희의 책이 작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해주세요.
“이제, 잠시 눈을 감고 편안하게, 깊은숨을 한 번 크게 내쉬어 보자.
그리고 천천히 아팠던 이야기를 마주할 준비를 해 보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어둡고 긴 혼란의 터널 속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처럼 이 책을 발견했다.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 다.
그것은 바로 삶이 정체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신호이다.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아가는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이제, 바로 지금,
함 께 시작해 보자.삶은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것이며,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서 충분히 사랑받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 운명이라는 착각: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법, 프롤로그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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